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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스미스 ㅡ 자유낙하,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예술가가 바라본 예술가, 키키 스미스

 

 키키 스미스는 1954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인간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의 여러 분야에 걸친 작업들은 신체에 관련된 죽음, 재생, 성별, 정치뿐만 아니라 영적인 것, 자연 세계의 상호 연결과 같은 분야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녀의 작업 영역은 조각, 유리, 판화, 수채화 사진 등 폭넓은 분야의 예술 활동을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스미스의 작업은 친밀한 것에서부터 대규모의 것, 섬세한 것, 강한 것, 그리고 인간, 동물, 천체의 요소들, 독수리, 여자의 흉상, 별, 구름의 폭발, 벌, 나뭇잎, 새, 나선형 성운 등 정말로 다양한 요소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별을 주제로 하는 그녀의 작업은 우주의 무한함과 그것을 알고 길들이려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줍니다. 별과 별자리 모양들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연의 경이로움을 일깨우며 고대로부터의 천문학자들이 이름 짓던 그 신비로움을 상기시켜줍니다.

 또한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스미스의 구상 작업은 AIDS와 젠더와 같은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최근 그녀의 작업들은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의 인간의 조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술에 파장을 일으킨 애브젝트(Abject) 미학

 키키 스미스가 예술에 입문하기 시작한 1980년대, 미국은 에이즈와 임신 중절 등을 둘러싼 이슈를 필두로 신체에 대한 인식이 두드러지는 시기였습니다. 당시 스미스는 아버지와 여동생의 죽음을 차례로 겪게 되면서, 생명의 취약함과 불완전함에 대해 오랜 시간 숙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배경들이 해부학에 대한 스미스의 개인적 관심사와 어우러지면서, 스미스가 신체의 안과 밖을 집요하게 오가며 탐구하는 계기를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분절되고 파편화된 인체의 표현과 더불어 생리혈, 땀, 눈물, 정액, 소변 등 신체의 여러 분비물과 배설물까지도 가감 없이 다루었던 스미스는, 신체에의 비위계적 태도를 취하며 1990년대 미국의 애브젝트 아트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기에 이릅니다. 여기서 애브젝트(Abject)란, 주체와 객체의 경계에서 주체도 객체도 아닌 모호하고 복잡한 것으로, 타자로 쫓겨나 주체나 사회에서 배제된 대상 즉 버려진 존재를 뜻하는 표현입니다. 그렇기에 애브젝트 아트는 사회적 규범이나 정체성, 체계 등을 뒤흔드는 역할을 하며 경계를 허무는 애브젝트의 가공할 만한 힘에 관심을 두고 타자를 사유하는 예술을 칭하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더 나아가 2000년대 이후부터는 동물과 자연, 우주 등 주제와 매체를 점차적으로 확장하며 현재까지도 그 경계에 구분이 없는 비선형적 서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키키스미스, 《천국》(2022), 실크 샤르무즈

 

키키 스미스 전시의 특징 및 구성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12월 15일에 개막한 이번 전시는 연대별, 주제별로 섹션을 나누지 않아 처음 볼 때는 다소 정리되지 않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특정 수식어를 사용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작가의 작업에 구분을 지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키키 스미스의 작업 자체가 한눈에 봐도 자유로운 편이며, 조각과 드로잉 등 표현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실험적인 도전을 해왔기에 전시 형식도 작가의 작품성을 따라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며, 이는 작가의 궤적을 어느 한 역사나 수식어에 국한하지 않으려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전시에서는 조각, 판화, 사진, 드로잉, 태피스트리, 아티스트북 등 약 140여 점에 이르는 키키 스미스의 작품을 두루 소개하고 있는데, 그녀의 작품의 주된 주제어로는 몸(육체), 여성, 탄생(생명)과 소멸, 그리고 재생(부활), 역사, 종교, 신화, 자연 등이 꼽힙니다. 그중 단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의 몸입니다. 작가에게 육체는 끝없는 질문의 대상이며 저항의 통로이자 창작의 보고가 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신체의 내부 기관을 주철(금속의 일종)을 구부려 만든 《소화계》(1988)를 포함하여 인체를 다룬 작품들을 많이 접해보실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든 에이즈나 임신중절 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던 1980년대 미국의 시대상이 작가의 개인사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인체, 즉 몸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여성 전신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나갔으며, 전시장 입구에 놓여 있는 나체 여성 조각상인 《메두사》(2004)를 필두로 여성의 몸을 소재로 한 작품들 또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신체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로 단순히 여성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거나 부각시키기 위해서가 아닌, 신체야말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형태이자 각자의 경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다층적인 스미스의 해석이 이번 전시의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 전시는 작가의 초기작부터 최근 작품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 동안 일관되게 관찰할 수 있는 서사의 구조, 반복성, 에너지라는 요소를 기반으로 하며,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세 가지 주제인 '이야기의 조건: 너머의 내러티브', '배회하는 자아', '자유낙하: 생동하는 에너지'를 제안합니다.

 

첫 번째 주제는 '이야기의 조건: 너머의 내러티브'입니다.

역사, 종교, 설화, 동화, 신화 등 다양한 배경에서 비롯된 작업의 모티프들이 한 화면에서 만나 어떤 구조를 이루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스미스가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과 함께 작가 특유의 조형 문법을 살피는 것이 핵심입니다.

두 번째 주제는 '배회하는 자아'입니다. 스미스는 조각과 사진, 판화, 태피스트리, 드로잉,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그녀의 작품 세계를 이렇게 확장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바로 판화와 사진 매체의 활용입니다. 이전까지 스미스는 작품 속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고 의도적으로 배제해 왔으나, 사진과 판화를 통해 수행적인 태도로 자신을 등장시킴으로써 작가의 드러남과 자아탐구, 그리고 반복성이 어떻게 제시되어 왔는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자유낙하: 생동하는 에너지'입니다. 2000년대 이후 키키 스미스의 작업 주제는 사뭇 다른 면모로 전환되며 복잡해진 듯 보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미스의 작업을 관통하는 근원은 변함없이 하나입니다. 그것은 바로 생동하는 에너지입니다. 마치 중력의 아무 간섭이 없이 화면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듯한 도상들, 불명확한 요소들이 서로 충돌하며 빚어내는 새로운 이야기 등 모두 생동하는 에너지로 귀결됩니다. 이 근원에 맞춰 전시 또한 곡선형의 순환적인 구조로 구성했다고 합니다.

 

 

 

 

 

전시회 정보

전시 이름: 키키 스미스 - 자유낙하

전시 기간: 2022.12.15~2023.03.12

전시 부문: 조각, 판화, 사진, 태피스트리, 아티스트북 등

                 (단행본과 굿즈는 미술관 3층에 위치한 예술 서점 더 레퍼런스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전시 장르: 기획

관람 시간: 10:00~20:00 화-금 / 10:00~18:00 토, 공휴일 / 매주 월요일 휴관

전시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1층 전시실, 2층 전시실

입장 티켓: 무료 (예약 없이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관람 문의: 02-2124-8868

전시 주최: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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